백두대간(完了)/백두대간(上·完了)

백두대간 15차(죽령〜소백산〜선달산〜도래기재)

무명(無 名) 2009. 4. 24. 13:10

 백두대간 15차 구간종주 산행기

 


1. 산행일정 : 2003. 04. 12〜13

2. 산행구간 : 죽령〜도래기재

3. 산행동지 : 오영동, 정영찬, 장진우

4. 산행여정

   2003. 04. 12

   03:45 부산 출발〜06:45 죽령 도착(승용차)


   2003. 04. 12 (제23소구간 : 죽령〜고치령) : 09시간 38분소요

06:55 죽령(산행시작) - 08:08 송신소입구 - 08:44 천문대(08:53 출발) - 09:28 제1연화봉(09:35 출발) -

10:23 비로봉(10:40 출발) - 11:44 국망봉(12:05 출발) - 12:15 상월봉 - 12:45 늦은맥이고개 -

12:55 1,272봉(13:25 출발) - 14:05 연화동갈림길(14:18 출발) - 15:28 마당치 (15:38 출발)-

15:55 형제봉갈림길 - 16:18 헬기장(16:28 출발) - 16:33 고치령


   2003. 04. 13 (제24소구간 : 고치령〜도래기재) :10시간 46분소요

06:17 고치령 출발(산행시작) - 07:17 미내치 - 07:40 헬기장(07:50출발) - 08:27 1,096봉(08:55출발) -

09:18 마구령(09:25출발) - 09:33 894봉(09:43출발) - 10:13 1,057봉(10:25출발) -

11:12 갈곶산(11:40 출발) - 11:52 늦은목이 - 12:50 선달산(13:40 출발) - 15:12 박달령(15:22 출발) -

16:16 옥돌봉(16:30 출발) - 17:03 도래기재

 

산행지도

 

 

5. 산행기

 

※ 2003. 04. 12(제23소구간 : 죽령〜고치령) 날씨 : 맑음

 오늘은 정말 가슴이 벅차다. 소백산 구간을 한 달음에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로봉 이후는 5월31일까지 건조기 국립공원 산불예방 구간으로 입산이 통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풍기에 도착하니 구름으로 뒤덮여 산봉우리가 전혀 보이지 않고, 죽령 고갯길을 돌고 돌아 희방사 입구를 지나면서 부터 도솔봉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낮은 구름이라 아래쪽 마을은 보이지 않지만 위쪽만은 개여 雲海를 이루고 있다.

 

 죽령에 도착하니 동아일보사의 “아! 백두대간. 왕초보 5인 삽사리와 가다”를 연재하고 있는

donga.com의 무소차량도  보인다.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커피 한잔씩을 하고 휴게소 왼쪽의 매표소로 향한다. 매표소에는 아직 인기척이 없다. 천삼백 원씩의 입장료도 지불하지 않고 소백산을 향하여 시멘트 포장길에 들어서니, 오른쪽 군부대에서 일조점호를 치르는 씩씩한 군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운무가 서서히 밀려 왔다 그리고 또 사라지더니, 도솔봉과 삼형제봉이 운해 위에 떠있다. 저 구름바다를 바라보며 지난날의 잘못일랑 띄워 보내자.

 

 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고 있으니, 봄은 이렇게 시작 되는가 보다. 시멘트길 을 오르다 오른편에 나무로 만든 전망대에 올라서 잠시 쉬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산행시작 70여분 후 중계소 입구에 도착한다. 죽령휴게소에서 4.3km지점으로 이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북동으로 굽어 돈다.

 


 

 

 

 죽령에서 소백산 오름길 시멘 포장도로

 

죽령에서 소백산 오름길의 운무

 

 송신소를 뒤로 하고 능선 시멘트길 을 따르면 오른쪽에 샘터가 나타난다.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완만하게 오르면 천체관측소에 도착된다. 관측소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구불구불 돌고 돌아 죽령으로 오르는 차도가 눈 아래 펼쳐진다. 운해와 어우러진 경치가 너무나도 황홀하다.

 

 천체관측소를 지나서야 본격적인 산행로에 접어든다. 이곳 이정표에는 죽령 7.0km→, ↓비로봉 4.2km, ←희방사 2.4km이며, 1.383봉 바로 아래는 희방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는 곳이고, 소백산국립공원 안내도가 버티고 서있다. 대간길은 자연학습탐방로 나무 계단 길을 지나 완경사의 내리막길로 아직도 눈이 제법 쌓여있다.

 

 

 

 죽령에서 소백산 오름길의 운무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죽령 오름길

 

 小白山 국립공원답게 아직 눈이 있을뿐더러, 이곳의 나무 밑동에는 이끼가 끼어 古色蒼然함 까지 느끼게 한다. 물결치듯 한 굽이를 오르내리면 헬기장 이다. 이곳부터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제1연화봉(1,394m)이다.

 

 

 제1연화봉 아래의 나무계단

 

천문대를 2km지나, 비로봉을 2.5km 앞둔 거리로 손에 잡힐 듯하나 그리 쉽지는 않다.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1,382봉과 1,395봉을 두어 번 오르 내리고 서야 눈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세월을 간다는 주목군락지가 왼편으로 보이고, 텅 빈 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대피소를 지나면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비로봉을 오르는 나무계단길이다. 2000년 2월말 이곳 산행시 시계를 낀 왼손목이 차가운 바람에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낀적이 있으니까.

 

 

 뒤로 소백산 비로봉이

 

소백산 비로봉

 

드디어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439.5m)이다. 죽령을 출발한지 3시간 30여분정도 걸렸다. 정상석은 마름모꼴의 자연석을 세워놓아 운치를 더하고, 그 옆에는 돌탑과 산 행객이 쉴 수 있게 나무의자까지 마련해 두는 자상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이곳 비로봉은 삼거리 갈림길이다.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비로사를 지나 풍기에 닿으나, 대간길은 왼쪽으로 휘돌아 완경사의 초원으로 이루어진 내리막 길이다.

 

 

 

 소백산 비로봉 아래 주목군락지

 

 소백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제1연화봉-천문대)

 

소백산 비로봉 정상

 

 아직 녹지 않은 잔설과 철쭉나무 가지가 우리들을 괴롭힌다. 이곳에서 고치

령에서 출발 하였다는 나 홀로 산행인을 만난다. 멀리 국망봉이 눈에 나타날 즈음 바위위에 누군가가 올라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울퉁불퉁한 바위일 뿐 정녕 사람은 아니었다. 국망봉과 나란이 한 능선에 오르면 ← 비로봉 2.8km, ↓초암사 4.1km, 국망봉 0.3km → 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비로봉에서 본 이정표에서는 국망봉까지 3.5km라고 해 놓고선 고무줄 이정표 인가?

 

 

 國望峰(1,420.8) 정상석은 1999년 6월 영주비봉라이온스클럽에서 기증하여 세운 대리석으로, 뒤편에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올라서면 남서로는 비로봉과, 동북으로는 상월봉이 운무와 힘겨루기라도 하는 듯 나타났다 살아지고 또 나타나기를 거듭 하고 있다. 또는 화창 하기도하고 구름에 휩 쌓이기도 하는 요술같은 날씨가 우리를 선계에 오른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곳 국망봉의 전설을 옮겨보면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제원군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을 짓고 머물러 있었다.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연유로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소백산 국망봉 정상

 

 국망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완만하게 내려서면 철쭉군락지로 왼쪽으로 탈출이 가능한 어의곡 4.9km라는 이정표를 맞는다. 이곳을 지나면 앞을 가로막는 봉우리가 상월봉(1,394m)이다. 상월봉 오른편에는 갓 움이 돋아나는 송이버섯 모양을 한 바위가 보인다. 상월봉과 바위로 오르는 길은 있으나 왼편 옆구리를 돌아 가파른 눈길을 내려간다.

 

 

 소백산 국망봉에서 바라본 상월봉

 

 30여분후면 늦은맥이고개를 바로 지나 해발 1,264m인 신선봉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1.2km 거리인 신선봉을 지나, 단양군 영춘면의 1945년 원각대조사가 창건 하였다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 본산인 구인사로 향할 수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바로 앞의 1,272m봉을 넘어 오른쪽으로 꺾어 양지 바른 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비운다.


 완만한 경사길이라 걷기가 너무나 좋다. 왼편의 음지에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한참을 걷다보니 오른쪽으로 옥대저수지가 모습을 나타낸다. 저곳 바로 윗쪽이 우리가 내려갈 세거리임에 틀림없으니 오늘 산행도 멀지 않았나 보다.


 부락이 보이더니  ← 상월봉 4.5km, ↓연화동 3km, 마당치 2.5km →로 되어 있는 해발 1,015m인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을 조금 지나 참나무 낮은 곳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몇 가지를 꺾어 배낭에 넣고, 노랑색의 야생화를 감상 하다보니, 넓은 공터에 잡풀만 무성한 마당치에 도착한다.

 

 

마당치

 

 마당치에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 북동으로 진행하면 1,032봉인데, 여기서 오른쪽 허리를 돌면 형제봉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형제봉은 2.8km로 멀지는 않으나, 산행한 흔적을 쉽게 찾기가 어려운것을 보니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구간이 아니라 아쉬운 생각된다. 그리고 이제 충북땅도 이곳이 마지막이니 조금은 섭섭하게 느껴진다. 잘있거라 충북이여!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가파르게 내려서 863봉 오르는 곳에 산불로 수 십년 된 소나무가 말라죽고, 참나무는 그 불길에도 참아 살아남은 흔적이 보인다. 863봉 전망대를 지나면 오늘 산행 날머리인 고치령에 도착한다.


 비포장도로인 고치령은 해발 760m로 영주시 단산면과 단양군 의풍리를 잇는 길로 지금은 승용차로 이곳을 오를 수 있으며, 옛날에 있었다는 고치령 신령각은 소실되고 그 자리에는 주목나무를 심어 나무 위에 금줄만 남아있다.


  이곳 고개마루에서 의풍 방면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는 찬물샘이 있는데 “찬물샘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형제봉 찬물샘을 사랑하는 사람들”라고 기록 되어있다. 수량은 풍부하지 않지만, 깔끔하게 샘터를 만들고 플라스틱 바가지 까지 준비하여 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내일 식수를 한통씩 채운다.


 우리는 이곳 고치령까지 승용차는 오를 수 없다는 산행기를 접하였기에 고치재 민박 서정영님

(☏ 054-638-4544, 016-9503-4544)께 부탁하여 트럭으로 고치령에서 세거리로 이동 하였으나, 이것모두 정보가 짧았음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일 산행의 날머리인 도래기재에서 고치령까지 회귀도 약속을 하였다.


 오늘도 지난주 산행때 묵었던 풍기읍 소백모텔(☏ 054-636-5681, 5682)의 친절에 보답코자, 그곳에서 여장을 풀고 인근의 복동이 숯불갈비에서 쇠주 한잔에 오늘 산행의 피로를 씻었다.


6. 돌아오는 길

   2003. 04. 12 

 - 17:10 고치령 출발〜17:25 세거리 도착(차비₩25,000)

 - 17:35 세거리 출발〜18:20 죽령 도착(택시비₩35,000)

 - 18:20 죽령 출발〜18:35 풍기 소백모텔 도착(승용차)

 

 

 


 

※ 2003. 04. 13(제24소구간 : 고치령〜도래기재) 날씨 : 맑음

  05:40 풍기 출발〜06:10 고치령 도착(승용차)

  

 어제 저녁 여관 주인장께서 고치령에서 떠온 수통을 얼리고, 햇반까지 익혀주셨고, 쌀 한 홉씩을 3봉지에 담아 각각 나눠 주시며 산새들 먹이로 산에 뿌려 달라고 부탁 하셨다.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배낭에 넣었다.

 

 

산행지도

 

 새벽 일찍 고치령으로 향한다. 어제 약속한 고치재 민박 서정영님께 산행 출발 시간을 알려드리고 고치령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산행객 두 명이 아침식사 준비로 부산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분들은 오늘 산행을 늦은목이 까지 예정하고 있다고 했다.

 

 

 고치령

 

 옛날 산신각 뒤쪽에 밧줄로 엮어 입산통제 표시를 해놓았다. 밧줄 옆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마구령 8.0km, 늦은목이 13.9km로 되어있다. 이곳 옆을 몰래 살짝 비켜 오르면 헬기장인데 119구조대 소백01-04로 오늘 산행이 시점이 된다. 다시 헬기장을 지나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완경사의 능선에 올라서니 동쪽에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경사가 조금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르면, 950m봉 왼쪽 옆을 돌아 북동쪽으로 휘어 마을 뒷산임을 착각할 정도의 완만하고 낙엽이 쌓인 능선 길로 걸음이 빨라진다. 걷기가 너무나 좋고, 아침에 찬 공기가 얼굴을 부비니 너무나 상쾌하다. 


 고치령을 출발한지 한 시간 후에 해발820m인 미내치(美乃峙)에 도착한다. 고치령에서 3.2km 지점으로 옛날 고개의 흔적이 조금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굴곡이 조금심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20여분뒤 잡초가 무성한 묵은 헬기장에 도착한다. 간식을 꺼낸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너무나 곱살스럽다. 이에 보답을 하고자 어제 저녁에 넣어둔 쌀을 한주먹 블록위에 놓아둔다. 더 좋은 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새소리를 뒤로하고 쉬임 없이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1,096.8m봉이다. 이곳 헬기장 모서리에도 새먹이를 뿌려주고, 봉우리를 내려와 햇반을 꺼낸다. 여관 주인께서 익혀 주신것을 다시 한번더 고맙게 생각하면서 거창한! 아침식사를 마친다.


 헬기장을 지나 능선은 남동으로 굽돌아 가는 완경사길 로, 내리막 오른쪽에는 늘씬한 춘양목(春陽木)이 눈에 들어온다. 춘양목은 줄기는 곧게 자라고 옹이가 없어, 목재의 질이 우수해서 한옥 건축재 및 문 짜는 데 쓰이며, 경상북도 청송과 이곳 춘양 지방에 많이 자라는 것으로 되어있다.


춘양목 지대를 지나 다시금 북동으로 굽이돌아 비포장도로로 해발 810m인 마구령(馬駒嶺)에 도착한다. 이곳 마구령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임곡리와 남대리를 이어주는 길로 노면 상태가 양호하다. 이곳 이정표 나무 위에는 돌 네개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게 재미 있으며, 고치령에서 8.0km, 선달산 까지는 아직 7.8km나 남아있는 걸로 표시되어 있다.

 

 

늦은목이

 

 마구령에서 대간길은 동쪽으로 이어지며, 가파르게 10여분 올라서면 헬기장이 있는 894m봉이다. 헬기장을 내려서서 다시금 한 땀을 흘리고서야 1,057봉으로, 이곳에서 바위능선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1,057m봉이다. 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갈곶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나드는 길목에는 솔 향과 잡목들 전나무, 철쭉과 진달래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해발 966m인 갈곶산에 도착된다. 이곳 갈곶산은 봉황산 갈림길로, 봉황산을 지나 신라 문무왕 16년(676년)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으뜸 사찰인 부석사로 연결된다. 


 갈곶산 오름길 정면으로는 멀리는 주실령과 그 아랫쪽에는 오전약수터가 보인다. 오전약수터는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봇짐장수(褓負商)곽개천이라는 사람이 서벽장을 보고 주실령을 넘어 후평장으로 가던 어느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이르기를 “네 옆에 만병을 통치할 수 있는 약수가 있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옆을 보니 과연 약물이 솟고 있었고, 조선 제9대 성종때 발견된 이 약수는 이듬해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이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쏘는 맛이 일품이며 주요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마그네슘이온, 염소, 중탄산, 칼슘이온, 철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갈곶산에서 30여분 머물면서 체력을 재충전 한다. 전나무며, 소나무 숲을 10여분 내려서면 해발 800m인 늦은목이에 도착한다. 이정표에는 ← 비로봉 28.0km(마구령 5.9km), → 선달산 1.9km로, 이곳 늦은목이까지가 소백산권역으로 입산통제 구간으로부터 완전 해방인 셈이다. 늦은목이에서 동쪽 아래 큰터골로 내려가면 물야면 오전리로 탈출할 수 있는 곳 이기도하다.

 

001.jpg

산행지도

 

 자아 이제 강원도 땅을 밟으러 선달산을 오르자! 선달산 오름길은 급경사는 아니지만 쉴 사이 없이 올라야만 한다. 능선에 발을 옮기면 아름드리 춘양목과 전나무 등이 서로 키 재기라도 하듯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부터 굴참나무며 진달래나무 군락을 지나면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는 주능선으로 대간길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다.

 

 

선달산(1,236m)에서의 期末古祠

 

 잡목에 쌓여있는 선달산(1,236m)은 묵은 헬기장으로 정상목이 오뚝이 솟아 있으며, 꾀나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강원도 땅에 발을 내디뎠으니, 山神에게 우리들의 앞으로 남은 산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期末古祠를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신문지위에 산행지도를 깔고 몇 되지 않은 과일과 떡, 작년에 담근 매실주로 제상을 차려 지신과 천신에게 정성껏 를 올렸다.


 음복(飮福)술을 한 잔 나누고 있을 무렵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모습을 드러냈다. 구미에서 오신 일반 산행팀이라고 하셨다. 음복술과 준비한 햇반으로 점심요기를 끝내고, 다시금 길을 재촉한다.

이제껏 북으로 치닫던 백두대간은 여기서 다시 동으로 휘어져 나간다. 조그마한 암봉을 지나면 1,246m봉으로 물야면 왕바우골로 내려가는 탈출로가 오른쪽으로 나있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는 참나무 숲 사이로 생달쪽에 저수지가 빠끔히 나타난다.


  멀리 헬기장과 좌우측에 임도가 보이더니 곧 이어 해발 1,009m인 박달령에 도착한다. 박달령 고개 마루에는 옥돌봉을 등지고 석회석벽과 문은 노랑색으로 잘 단장된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박달령까지 산행을 끝낼 계획 이라면, 고치재 민박 서정영님(☏ 054-638-4544, 016-9503-4544)께 부탁 드리면 이곳까지 차량통행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임도는 물야면 오전약수로 연결이 되어있다. 산신각을 오른쪽에 두고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옥돌봉으로 향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9시간이 지난 지금 지칠 대로 지쳐있다. 완경사의 잡목길을 시름시름 쉬지 않고 오르다, 주실령(朱實嶺)으로 연결되는 산 사면에 오를 때는 깔딱 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박달령쪽의 완경사와는 다르게 경사가 제법 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5분여후면 옥돌봉에 도착한다. 

 

 

 

옥돌봉(1,242m) 정상

  

옥돌봉(1,242m)의 정상에 오르면 봉화산악회에서 정상석을 세워 놓았고, 북쪽에는 헬기장으로 넓은 공터를 이루나, 남쪽으로는 절벽으로 남북간에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제 도래기재로 내려가는 길만 남았으니 한숨 돌린다.


 옥돌봉에서 북동으로 나있는 도래기재 하산 길은 약3km 거리인 완경사로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달리듯 내려선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절개지 위쪽엔 밧줄로 묶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아마도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이곳을 조심하여 내려서면 88번 지방도인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도래기재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고치재 민박 서정영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벌써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말씀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도리기재에서 고치령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위치하고 백여 년 전부터 피부병, 위장병에 약효가 있다는 소문이난 두내약수(斗內藥水)터에 들러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고치령에 도착 찬물샘에서 수통을 다시 채운다.


6. 돌아오는 길

   2003. 04. 13

   - 17:10 도래기재 출발〜18:27 고치령 도착(차비₩30,000)

    - 18:35 고치령 출발〜22:30 부산 도착(승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