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맥(完了)/금남정맥(完了)

금남정맥 8구간(진고개〜부여여고〜고란사〜구드래나루)

무명(無 名) 2009. 6. 1. 08:43

금남정맥 4차 구간종주 산행기


1. 산행일정 : 2005. 06. 18(토)〜19(일)

2. 산행구간 : 만학골포장도〜구드레나루

3. 산행동지 : 오영동, 장진우

4. 산행여정

   2005. 06. 18〜19

 - 06. 18. 06:00 부산 출발 〜 09:17 만학골포장도 도착(승용차)

  

  2005.06.19 (제8소구간 : 진고개〜구드래나루) : 08시간 45분소요

07:15 진고개 출발(산행시작) - 08:10 감나무골,산골사거리(08:15출발) - 08:33 265봉(08:45출발) -

09:18 2차로AS포장도(09:25출발) - 09:37 파평윤씨합장묘 - 10:02 가척리삼거리 - 10:55 벌목지대 -

11:05 철탑 - 11:23 184.9봉(11:30출발) - 12:10 청마산성안내판 - 12:15 시멘포장도 - 12:31 홍씨묘 -

12:34 장대지 - 12:47 4번국도(13:02출발) - 13:25 통사대(13:30 출발) - 13:37 무노정 -

13:43 국도상부다리 - 14:00 부여읍 고참반점(14:20출발) - 14:25 부여여고 - 14:42 영일루 -

15:05 낙화암휴게소(15:15출발) - 15:20 고란사(15:32출발) - 15:40 낙화암 - 16:00 구드래나루

 

산행지도

 

5. 산행기 

※ 2005. 06. 19(제8소구간 : 진고개〜구드레나루) 날씨 : 흐림

 - 06:30 여관 출발 〜 06:35 구드레나루 도착(승용차)

 - 06:50 부여 출발 〜 07:12 진고개 도착(택시비 ₩18,000)


 일찍 일어나보니 다섯 시 반으로 다행히 비는 그쳤고 잔뜩 찌푸린 날씨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승용차로 구드래나루로 향한다. 구드래나루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서는 부여읍 중심가로 택시를 타기위하여 걸어 나온다. 나오는 도중에 길에 노랗게 떨어진 살구 두어 알을 집어 들고서는 지나가는 택시에 오른 뒤 살구를 입에 넣는다. 기사 분께 탄천면 소재지를 지나서 진고개로

가자고 하였다. 그 기사 분은 진고개라는 지명이 생소하신 모양이다.


 진고개에 도착하여 주막집 옆의 절개 지를 오르는데 나뭇잎에는 전날내린 비로 이슬이 맺혀 옷을 적시고, 길 또한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오른다. 넓은 밤 밭이 펼쳐지는데 밤 밭을 오른쪽에 두고 가장자리를 휘이 돌아간다. 진고개에서는 발자욱이 없었는데 밤밭을 지나면서 먼저지나가신 산님네께서 이슬과 거미줄을 걷으면서 지나가신 것이 너무 기쁘다.

 

 진고개 주막집               

 

   조그마한 첫 봉우리를 오를 즈음에는 산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이어 예쁜 버섯을 촬영하느라 늦어졌다는 후미의 산님을 만났다. 강원 원주에서 열일곱 분이 오셨다고 하였다. 그리 높지도 않은 봉우리에 올랐다 왼쪽으로 꺾어서 가파르게 내려가니 시멘포장 도로인 감나무골-산골 사거리에 도착한다. 숨을 고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멘 포장도로 오른쪽위로 올라 첫 봉우리에 올라서면 홍성 山꾼의 금남정맥 이정표를 이곳에도 걸어 놓으셨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정맥길은 방향을 바꾸어 두어 구비 오르면 265봉이다. 잡목 숲을 내려가니 원주에서 오신 산님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쉬었던 자리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아침 식사라야 아침에 익혀온 햇반이지만 오늘이 금남정맥을 끝맺는 날이라 맛있게 느껴진다.


    간단하고 짧은 시간에 아침 식사를 끝내고 20여분을 진행하니 까마득 아래에 2차로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원주의 산님들께서 쉬고 있으시면서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조심조심 미끄러운 절개지를 내려가니 참외 한 조각을 주신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원주 산님들

 

    산님들을 뒤로하고 먼저 절개지 위를 오른다. 산딸기가 탐스럽게 빨갛게 익어 있어 몇 알을 따서 입에 넣었더니 새큼하다. 뒤에 오시는 산님들의 몫을 남겨놓고 길을 나선다. 잡목이 우거진 등산로를 오르니 파평 윤씨 합장묘 3기가 서열에 따라 줄을 서있는 곳을 지난다. 가척리 삼거리를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벌목 지대로 멀리 오늘 우리가 걸어야할 능선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벌목지대를 두고 반 바퀴 원을 그리듯 돌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내려가면 계곡으로 떨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곧이어 철탑을 건설하기위하여 닦아놓은 임도를 지나면 바로 철탑에 도착한다. 철탑을 지나 20여분 오르면 184.9봉이다. 이곳부터 청마산성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산행로는 부여 시에서 오늘 아니면 어제쯤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여 말끔하게 정리 하여 놓았고, 길 또한 넓고 완만하다.

 

 4번 국도

 

   한참을 내달리다시피 내려가니 부여 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내용인즉 “지정별:사적 제34호, 소재지: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산 1-1호, 이 성은 해발 118미터 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백제시대 최대의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6.5킬로미터이며 높이는 4-5미터 가량 된다. 성을 쌓는 방법은 흙과 돌을 함께 쓴 토석 혼축식(土石 混築式)이며, 형태는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이다. 포곡식 산성은 내부에 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넓은 공간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인원이 장기간 머물러 살기에 좋다. 청마산성은 유사시 사비도성 내에 있는 군․관․민이 모두 함께 도피할 목적으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 안에는 군창(軍倉) 으로 추정되는 큰 건물터가 3곳이 있으며, 각시우물이라 불려지고 있는 우물터와 경룡사(警龍寺)라는 절터가 남아 있다.”라고 적어 놓았다.


  청마산성 입간판을 지나 넓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시멘 포장도로를 만난다. 이곳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 LPG 2.1KM, 수자원 3.1KM→ 라고 표시 되어 있는 걸로 미루어 4번 국도까지 약 2km정도가 남았음을 알 수 있다. 노송이 어우러진 널찍한 산행로를 내려가 남양홍씨묘를 지나서면 부여사 비나성(夫餘泗沘羅城) 장대지(將臺址)란 입간판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나무의자에서 잠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통사대

 

   잠시 머물다 차량소음이 요란한 4번 국도에 도착하여 주민에게 여쭈어 보고 부근의 음식점을 찾았지만 문을 닫았다. 다시금 가나다엘피지충전소에 들러서 부근에 음식점이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약300m 후방에 음식점이 있다고는 하나 왕복이면 엄청난 거리라 부여 시가지까지 가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는 않지만 어찌하랴.


    국도 변 금성산(조왕사) 1.7km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접어든다. 노송들이 어우러져있는 깔끔한 산길을 오르니 8각정인 통사대에 오른다. 팔각정 정자 위에는 엄마와 오누이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여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곳에서 우리가 진행할 부소산 앞의 부여여고를 가르쳐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내려서니 차량통제를 위하여 설치하여 놓은 돌 위에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버티고 있다.

 

통사대 아래의 장수하늘소  

 

   또 하나의 정자인 무노정을 지나 국도위로 설치하여 흙을 돋우어놓은 다리를 지나니 석벽 홍춘경 시비(石壁 洪春卿 詩碑)를 지나서니 양궁장이 나타난다. 여태껏 보이던 표시기가 살아졌다. 아마도 詩碑 뒤쪽으로 나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야 되는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부여여고 입구 횡단보도 옆에 있는 고참반점에 들러 콩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막걸리 한잔의 꿈은 이루지 못한다. 왜냐하면 음식점에 막걸리를 팔지를 않는다고 하여 슈퍼마켓을 찾았으나 부근에는 슈퍼마켓도 막걸리가 없어 또한 허사였다.

 

 석벽 홍춘경 시비(石壁 洪春卿 詩碑)               

 

부여여고  

 

   횡단보도를 지나 부여여자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정문에서 본관건물 오른쪽계단으로 오르면 산길과 연결된다. 얼마 오르지 않아 잘 포장된 부소산의 일주 도로를 만난다. 왼쪽의 사비문(泗沘門)으로 내려갔다 되돌아 올라온다. 영일루를 지나 부소산성 반월루를 돌아, 낙화암 입구에 있는 휴게소에서 이제야 막걸리의 한을 풀고자 의자에 앉아서 한통을 시켜 나눠 마신다. 꿀 같은 맛이다.

 

영일루  

  

 반월루

 

   막걸리 몇 잔 후 먼저 고란사를 찾아 계단을 내려간다. 부여의 고도인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와서 고란사를 찾았던 것이 생각나 집으로 전화를 한 통화 하였다. 전화 통화 시 고란사 뒤쪽의 약수 이야기가 있어 빈 물통 두병에 가득 채운다. 약수터 입구에는 “고란약수와 어린이가 된 할아버지”라는 입간판을 세워 놓았는데 이야기인즉 약수를 많이 마신 할아버지가 회춘하여 어린이가 되었다는 전설을 기록하여 놓았고, 옆에는 이곳에서 서식하는 고란초(皐蘭草)를 유리상자 안에 전시하여 놓았다.

 

고란사

 

고란사

 

고란사의 고란초 

 

   고란사를 되돌아 나와 낙화암으로 향하여 오른다. 백화정(百花亭) 뒤쪽에 위치한 낙화암(落花岩)의 유래는 이러하다. “백제의 700여년의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의 궁녀들이 「차라리 자결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하고 이곳에 이르러 강물에 몸을 던져 원혼을 묻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낙화암 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 당시 궁녀의 절의(節義)를 기리기 위해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해서 이름 붙인 것이다. 암벽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글씨로 전하는 낙화암(落花岩) 이라고 조각된 글자가 있다. 1929년에는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의 꼭대기에 육각형의 백화정(百花亭)을 건립하였다.”고 적어 놓았다.

 

백화정(百花亭)과 낙화암(落花岩)

 

백화정(百花亭)

 

낙화암과 백마강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월은 찰라나 다름없다고 느껴진다. 이때 학생들을 데리고 여행 오신 듯한 선생님의 말씀 왈(曰) 낙화암에서 바라 보이는 곳인 위쪽의 다리와 아래쪽의 다리사이를 백마강이고 그 밖은 금강이라고 설명을 하여 주시는걸 듣고서는 이해가 가는 바였다. 구드래 나루의 백마강의 설명에는 “부소산 건너편 상류쪽 천정대앞 범바위 남쪽 파진산에 이르는 금강의 일부를 백마강”라고 기록하여 놓았다.여태껏 금남정맥이랍시고 금강의 분수령을 걸어왔으니까.


    낙화암을 되돌아나와 오르니 원주에서 오신 산님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구드래나루에서 무공해 원주 막걸리를 한잔하게 기다리라고 말씀 하신다. 포장도가 아닌 지름길로 내려서니 아침에 주차하였던 주차장을 지나 백마강가로 향한다.

 

백마강과 구드래나루

 

백마강  

 

   구드래 나루에 도착하여 기념촬영을 하였다. 지난 1월22일 백두대간 영취산을 출발하여 13일간(101시간59분)의 먼 여정으로(겨울, 봄, 여름 3계절 동안) 금남호남정맥과 금남정맥산행에 끝까지 고락을 같이 나눠주신 장진우님께 감사드린다. 금번 금남정맥 종주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산행로가 딴 곳에 비하여 깨끗하고(몇 군데 벌 목지 제외) 조망 또한 수려하여 권장을 하고 싶은 곳이라고 느껴진다.

 

백마강과 구드래나루  

 

   원주의 산님들을 기다리지를 못하고 구드래나루 주차장을 출발한다. 옷을 갈아입었기에 개운하다. 논산을 거쳐 계룡 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호남고속도로지선과 대전남부순환도로 및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마산외곽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부산으로 무사히 돌아 왔다. 주차를 하고 가까운 음식점(갑돌이 아구찜)에서 소주 세병을 해단 식으로 나눠 마시면서 자축을 하였다. 항상 건강하고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호남정맥을 위하여...

 

 백마강과 구드래나루

 

6. 돌아오는 길

   2005. 06. 19  

   - 16:40 부여 구드래 나루 출발 〜 20:40 부산 도착(승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