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完了)/백두대간(下·完了)

백두대간/하행 2구간(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

무명(無 名) 2013. 9. 9. 07:42

백두대간(하행) 2차 구간종주 산행기

 

1. 산행일정 : 2013. 09. 07(토)

2. 산행구간 : 미시령〜마등령(강원 고성, 인제군, 속초시)

3. 오른산 : 황철봉(1,381m)

4. 산행자 : 무명 외1

5. 산행여정

   - 07:45 속초 노학동 출발 〜 08:00 미시령 도착(승용차)

2013. 09. 07 (제2소구간 : 미시령〜마등령) : 09시간 50분소요(약15.4km)

 

※ 대간구간(약8.0km)

08:00 미시령 - 08:58 울산바위갈림길 - 09:52 1,318.8봉(△설악22,1987재설) - 10:27 황철봉(10:44출발) -

11:37 저항령 - 12:28 휴식(12:55출발) - 13:29 삼각점(설악414,2007재설) -

14:17 마등봉(△설악304,2007재설) - 14:28 비선대갈림길(14:39출발) - 14:44 마등령

※ 탈출구간(약7.4km)

14:44 마등령 - 15:05 휴식(15:22출발) - 15:43 오세암 - 15:55 전망대갈림길 - 16:05 전망대 -

16:21 전망대갈림길 - 17:00 영시암 - 17:50 백담사

 

6. 산행기

※ 2013. 09. 07(제2소구간 : 미시령〜마등령) 날씨 : 맑음 흐린 뒤 게임

아침에 일어나니 설악 능선과 맞닿은 하늘은 맑게 게여 있다. 어제 비에 젖은 등산화 때문 오늘 산행을 포기 하려 하였는데 처제의 아이디어로 등산화를 헤어드라이기로 뽀송뽀송하게 말렸고 오늘도 산행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 좋은 아침이다. 하지만 오늘 산행도 입산통제구간을 지나야 한다는 부담감은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오늘은 미시령에서 마등령을 거쳐 공룡능선을 오르내린 뒤 신흥사 방향으로 하산 할 예정이고 산행의 동행은 손아래 동서와 같이 하기로 하였다. 미시령을 오르는데 고갯마루에만 구름이 걸렸다. 미시령에 도착하여 2일차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지도

 

산행지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너 1,326.7봉

 

08:00(미시령)

미시령 휴게소 건너편 ‘국립공원특별보호구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2007년~2026년까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1차 종주시인 2003년에도 입산을 통제한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이렇게 또 변경이 되었다는 내용일까? 2026년이 되면 더 떠 밀려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뜻이 되겠다. 입간판 뒤에는 원형철망과 약2m 높이의 철망이 쳐져 있는데 이슬을 헤치며 둘러보았지만 뚫린 구멍이 없어 야생동물의 이동도 단절이 되었을 듯싶다. 그러니 미시령 구간의 양쪽의 상봉 방향과 황철봉 방향은 동물보호를 한답시고 2중 3중의 철책으로 동물들의 감옥을 만들어 동물이동 단절을 합법화시킨 국립공원의 처사가 아쉽기만 하다. 철망으로 아무리 꽁꽁 묶어도 지날 사람은 다들 지나고 가지 않을 사람은 가라고 하여도 가지 않는 곳이 아닐까? 가슴 정도의 높이에 뚫린 구멍을 밟고 뛰어 넘는데 뒤에서 누가 잡아채는 느낌이 들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침 드리워진 운무가 한 몫을 더해준다.

 

미시령 들머리

 

철망을 넘어 잽싸게 수풀 속으로 숨어들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벌써 어제내린 비에 젖어있는 풀섶의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처음에는 또렷한 길이 보이지를 않는데 아마도 정면 돌파가 어려워 뿔뿔이 흩어져 오르내려 그럴 것 같다. 잠시 뒤 길도 또렷해지고 오른쪽의 인제군 용대리 방향으로 낮게 드리워진 구름위로 향로봉이 또렷하게 조망된다. 고생 끝에 보람이란 말을 빌리면 어떨까 싶다만 이제부터 고생의 시작이 아닐까?

 

용대리 방향

 

지나온 상봉

 

08:58(울산바위 갈림길)

첫 봉에 올라서면 Y자형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1,092봉을 지나 울산바위로 가지만 대간길은 오른쪽이다.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자연보호가 아닌 천연보호란 대리석에 새겨진 표지석이 보인다. 이내 정면으로 너덜지대가 펼쳐지는데 이곳의 너덜은 집채 보다는 적지만 바위정도의 크기로 넘기가 매우 힘이 들고 위험한 곳이라 매우 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야할 능선

 

야생화

 

천연봉

 

너덜지대

 

09:52(1,318.8봉)

너덜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향로봉에서 어제 지나온 마산과 병풍바위 그리고 신선봉과 상봉이 한눈에 들어와 조망이 아주 시원하다. 오른쪽 발아래에는 인제방향으로 미시령으로 오르는 도로가 꼬불꼬불 갈지(之)자로 보인다. 그리고 너덜지대에는 빨노흰색을 칠한 봉을 묶은 로프가 드리워져 있지만 10년 전에는 리본을 돌로 눌러 놓아 방향 감각을 놓칠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겠다. 숨을 헐떡이며 너덜지대를 빠져나와 올라서면 1,318.8봉으로 삼각점이 박혀있다.

 

너덜지대

 

향로봉 방향

 

지나온 상봉

 

너덜지대 오름

 

너덜지대 오름

 

너덜지대

 

지나온 능선

 

지나온 상봉과 마산

 

1,318.8봉의 삼각점

 

10:27(황철봉/1,381m)

1,318.8봉에서 35여분을 진행하면 황철봉(1,381m)인데 '천연보호구역‘이란 돌 표지 석 머리에 매직으로 ’황철봉‘이라고 적어 놓은 게 전부이고 조망도 전무하다. 황철봉 바로 아래에서 어제 정선 레일바이크를 타러가서 구입했다는 ’생 막걸리 곤드레‘와 옥시시 한 개씩을 나눠 먹으며 나팔과 하모니카를 모두 불고 간다.

 

황철봉

 

곤드레 생 막걸리

 

11:37(저항령)

황철봉을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의견을 교환한다. 홀로 같으면 충분 하겠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많지 않은 동서와 동행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 같아 대간길은 마등령까지로 하고 날머리를 신흥사나 백담사로 하기로 하였다. 내려서는데 대간의 동쪽인 외설악에는 운무가 가득히 덮고 있고 내설악 방향에는 또렷한 윤곽이 보이는데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이 영동과 영서는 큰 차이로 구름도 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온과 생활방식까지 모든 게 다르게 나뉘는 대간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짧은 너덜길을 지나 내려서면 평평한 저항령이다.

 

고사목

 

운무에 쌓인 울산바위

 

자작나무

 

가야할 저항령~공룡능선

 

가야할 저항령~공룡능선

 

건너 1,326.7봉과 공룡능선(좌)

 

건너 1,326.7봉과 공룡능선(좌)

 

건너 1,326.7봉과 공룡능선(좌)

 

금강초롱

 

금강초롱

 

취나물 종류

 

저항령

 

12:04(전망바위)

저항령을 지나 다시금 오름길로 바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지대가 넓게 펼쳐지지만 1,318.8봉 오름길의 너덜보다는 바위의 크기도 작아져 많이 순해진 느낌이다. 올라서니 운무가 조금 걷히고 왼쪽으로 설악동 방향이 조망된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건너편에 1,249.5봉의 바위가 솟아있다.

 

나무의 무늬

 

지나온 능선

 

지나온 능선

 

다시 너덜길

 

설악동 방향

 

표시기

 

설악동 방향

 

야생화

 

구절초

 

산오이풀

 

암봉

 

암봉

 

1,249.5봉(이곳을 우회)

 

13:29(삼각점)

전망바위에서는 오른쪽으로 바로내려서서 건너편에 있는 1,249.5봉을 오른쪽 산 사면으로 우회하여 주능선에 올라선다. 1% 부족할 때 약으로 쓰려고 아침에 준비한 이슬 이를 끄집어내어 보충을 하니 101%가 된듯하다. 파란 병의 하얀 위장약을 보충한 뒤 다시 길을 나선다. 30분여 후 길가 왼편에 삼각점(설악414)이 박혀있는 곳을 지난다.

 

암봉

 

암봉

 

내설악

 

가야할 능선

 

너덜지대

 

고사목

 

등로 옆의 삼각점

 

14:17(마등봉?)

삼각점(설악414)을 지나 오늘 마지막 봉우리를 올라간다. 작은 돌로 이루어진 너덜길은 직선이 아닌 짧은 갈지(之)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등산로에서는 조금은 특이한 느낌이다. 올라서면 1,326.7봉으로 삼각점(설악304)이 박혀 있는 곳이다. 삼각점 옆에는 돌에다 마등봉 이라고 적어 놓았는데 바로 아래가 마등령이라 누군가 이름을 붙인듯하다.

 

외설악

 

투구꽃

 

지나온 능선

 

지나온 능선

 

산부추

 

마등봉

 

14:44(마등령)

삼각점이 있는 마등봉에서 3시 방향으로 꺾어 내려선다. 산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밧줄이 가로막고 있는 비선대 갈림길에 닿으면서 입산통제구간을 벗어난다. 미시령에서 이곳 까지 너덜이 아닌 곳은 신작로처럼 반질반질한 길이다. 공단에서 세운 입간판에는 ‘이 지역은 야생 동‧식물의 마지막 도피처로, 멸종위기 1급 생물인 산양, 멸종위기 2급인 삵과 한국특산식물인 산솜다리가 살고 있다’고 되어 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마등령으로 내려서는데 투구꽃이 군락을 이룬다.

 

지나온 능선

 

비선대 갈림길의 입산통제 안내판

 

비선대 갈림길

 

투구꽃 군락지

 

마등령의 이정표

 

마등령

 

천연보호구역도

 

이정표

 

이정표

 

15:43(오세암/五歲庵)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를 날머리로 잡아 내려가기로 한다. 이정표에는 오세암까지 1.4km라 40여분 걸리겠다고 느껴진다. 가파른 길을 다 내려서서 너럭바위에 앉아 남을 이슬이를 비우고(15:05~15:22) 오세암에 닿는다.

 

절경

 

오세암의 이정표

 

(오세암/五歲庵)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3) 자장(慈藏:590~658)이 이 곳에 선실(禪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普雨)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오세암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오세암

 

16:05(전망대)

오세암에서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목의 첫 오름길에서 왼쪽으로 보면 등산로가 아니라는 팻말이 세워진 곳에서 10여분 올라가면 정말 훌륭한 조망처가 나온다. 대청봉과 소청산장 그리고 봉정암이 또렷하고 오른쪽으로는 중청~끝청~귓때기청봉으로 이어지고 용아장성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게 바로 앞이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동리면 조금 전 지났던 마등령에서 설악공룡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발아래에는 오세암이 자리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용아장성능

 

전망대에서 공룡능선

 

전망대에서 서북능

 

전망대에서 대청봉(뒤)과 용아장성능

 

전망대에서 공룡능선과 희운각 방향

 

전망대에서 오세암 뒤로 마등령

 

17:00(영시암/永矢庵)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백담사로 향한다. 중간에서 만난 분(아마도 오세암에서 1박을 예약 하신 듯)께서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마지막 버스가 오후 6시 라며 빨리 가셔야 탈수가 있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그때가 백담사까지 약5.9km 정도 남았고 17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동서에게 빠른 걸음으로 가자고 이야기 하고 바삐 진행한다. 약2.4km 정도인 영시암에 도착하니 17시로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영시암 앞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금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갈림길 이정표

 

내설악에 있는 영시암(永矢庵)은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김삼연이 세상에 뜻이 없어 찾아든 곳이다. 그는 『영시암기』에서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가지 않기를 맹세하였다[인간출세위서(人間出世爲誓)]”라고 하였다. ‘영시’란 길이 맹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당시 나라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살던 이곳 영시암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기에 “혹 휴양하려는 사람이 먼 곳에서 다투어 몰려왔고, 혹 기(氣)를 기르려는 선비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라고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세태를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영시암

 

영시암 앞 마당의 당귀

 

17:50(백담사/百潭寺)

영시암을 지나 이제 백담사까지는 3.5km 정도이고 약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충분하게 도착될 것으로 느껴진다. 길도 완만하게 좋지만 모든 사람들이 뛰 듯 걷고 있으니 느리게 걸을 수도 없다. 드디어 백담탐방안내소를 지나 백담사 버스정류장에 17시50분에 도착했다.

 

백담분소

 

백담사(百潭寺)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 관한 기록으로는 <설악산심원사사적기 雪嶽山尋源寺史蹟記>와 한용운(韓龍雲)이 편찬한 ≪백담사사적 百潭寺史蹟≫이 있다.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진덕여왕 1)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고 한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담사입구

 

7. 돌아오는길

   - 18:10 백담사 출발 〜 18:25 용대리 도착(버스)

   - 18:30 용대리 출발 〜 18:55 속초 도착(승용차)